도박 중독의 심리학 (원인)

도박 중독의 심리학

 

‘중독’은“욕망 추구에 있어 자율성 또는 자유를 상실한 상태”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의학에서 도박중독은 전통적으로 도벽증, 방화광 등과 함께 충동조절장애로 분류된다. 이는 정신분석적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박중독은 충동조절장애의 대표적 질환이며 현대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도박시장이 합법화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그 범위도 넓어지고 심각성 또한 깊어졌다.

 

정신의학적 임상 진단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진단도구인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 (DSM-IV)에 의하면 도박중독(병적 도박)은 도박에집착, 도박행위 자체로부터 오는 쾌감과 내성을 포함 하는 의존성, 중단하려는 노력의 반복된 실패, 도박으로 파생되는 문제들(현실도피의 수단으로서 도박, 본전 찾기에 집착, 경제적 파탄, 반사회적 행동의 가능성, 중요한 관계들의 상실) 등으로 구성된다.

 

1)도박중독의 원인론은 크게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차원 등으로 나누어 고찰해 볼 수 있는데 개인적 차원에서 도박중독증을 설명하려는 학자들은 다시 생물학적 원인을 지지하는 집단과 심리적 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 등으로 이분된다.

 

생물학적 원인론은 정신의학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바 카테콜아민이나 도파민 등과 같이 다행증(euphoria)과 쾌락적흥분(excitement)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중독증이 일어나며 도박중독증 또한 이들 물질들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인간 심리가 유물론적 관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법. 심리적 원인론 또한 오래전부터 설득력있게 제기되어 왔다.

 

개인심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파들 중에서는 정신분석적 원인론과 인지행동 원인론 양자가 그 주류를 이룬다. 프로이드는 모든 중독증의 원형으로 자위행위를 상정하였다. 그는 도박중독증 또한 오이디푸스기에 일어나는 정신적 갈등, 사춘기의 성적 충동과 자위행위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신병리로 해석하였다. 그의 이론은 사대부 집안을 노름으로 패가시켰던 파락호처럼, 완고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오이디푸스적 갈등에 기인하는 도박심리를 분석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도구가 되었지만, 여성 도박중독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기제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도박의 정신분석이 의사들을 중심으로 이론이 전개되어왔다면, 학습이론·인지이론 등으로 도박 심리를 공식화하려는 노력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지속되어왔다. 학습이론들 중에서는 조작적 조건화 이론이 도박심리 분석에 많이 차용되는 것 같다.

 

2) 자신이기계나 카드를 만져서(조작하여) 돈을 따게 되었을때, 그의 머릿 속에 도박행위와 보상(강화) 사이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만들어지고 간헐적으로 터지는 실재적 또는 상상적 대박은 이 회로를 더욱 강렬하게 작동시키게 된다. 예측가능성과 예측불가능성이 교차하도록 고안되어있는 도박시장의 전략은 돈을 반드시 따게 될 것이라는 낙관으로 가득 찬 기대와, 경제적 손실에 의한 낭패감·죄책감 사이를 순환하면서취약한 사람들이 점진적으로 도박자체의 쾌락에 몰두하도록 만들어, 결국 도박중독의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따게 되면 보상에 의한 심리적 강화가일어나기 때문에, 잃으면 잃을수록 만회해야한다는 박감이 동반된 대박에 대한 기대심리가 고조됨으로써 이들은 도박중독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것이다.

 

 

도박 중독의 사회적 원인론은 과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사회적 계층이 낮을수록 심리적으로 불
안정한 환경에서 양육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도박 중독 유병률이 높지 않을까 추정하는 정도였다. 그러나도박이 합법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문가들은도박중독에 있어 사회적 요인들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사회환경 또한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변화들을 미루어볼때 도박중독의 원인론에서 사회적 요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향후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몇 가지 중요한 이유들을 짚어본다면

 

첫째, 경제적 흐름이근검절약과 재투자라는 고전적 자본주의와는 점점거리가 멀어지고 모든 경제적 활동에는 항상 기회와위험이 동반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투기’라는말들이 이제 우리에게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돈을 굴려야한다는 의미에서 재테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등 성실히 아껴서 한푼 두푼 모아서 부자가되었다는 저축신화는 이제 먼 옛날이야기다. 사회전체에 투기와 도박심리가 만연되어 있다.

 

둘째, 많은 국가에서 도박장을 합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카지노로부터 경정장에 이르기까지 도박시장은 이제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중요한 세원이다. 국가가 공인하는 도박시장이 속속 세워지고 느슨한 감시를 뚫고 유사 도박장들이 생활공간 깊숙이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억압되어 왔던 잠재적 중독자들의 도박심리를 일깨우는 방아쇠 역할을할 뿐 아니라, 도덕적 방어벽 또한 무장해제 시켜 도박중독자들을 양산할 수도 있다.

 

셋째, 현재 우리들이 목도하고 있는 도박중독의 확산은 질병 또는 정신병리 개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비슷한 현상으로 인터넷 중독을 들 수 있겠다.

한동안 임상가들은 인터넷 중독을 의학적 체계에 포섭하기 위하여 많은연구들을 하였지만, 의학적 모델만으로는 설명할 수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인터넷 중독이라는 가면속에 은폐되어있는, 다양한 일차적인 정신의학적 문제들은 물론이고 사회계급과가족 문제 등과 같은 사회학적 요인들도 고려해야하는, 개인병리와 사회병리가 헝클어져있는 총체적 난제라는 것이다. 새롭게 확산되는 도박중독 현상 또한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인 바 DSM-IV에서는 이미 전문적 도박사, 사교적 도박, 조증상태, 반사회적 인격장애3) 등은 진단에서 배제하고 있다.

 

근대 이후 사회는 점차 인위적 또는 인공적 환경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외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주체는 영원
히 인간 개체일 것이기 때문에 개인심리는 여전히 사태의 중심에 있다. 인지행동적 접근과 생물학적 방법론은 공리를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 과학적 정확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공리를 벗어나는현상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많은 심리 현상들이 모호함으로부터 벗어나 생물학적·인지행동적 인과관계로 정리되었지만 도박중독에 대해서는 아직은 현상 또는 결과물들을 설명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도박중독 치료는 뚜렷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는 않는것같다. 어쩌면 그 시도들은 무한히 과녁을 빗나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는 길은 죽음본능(타나토스 anatos)의 완성에 도달함으로써 끝이 날 것이기 때문에 그 경로가 인과관계와 정면으로 조우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자연 상태로 태어난 한 개체가 사회적대리자들인 자기 주변의 중요한 인물들과 상호작용
하면서, 사회화 되어가는 과정에 관한 탐구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에서 개인심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심리
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한 개인에 대한 심층적 탐구는 곧 그 사회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
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도박 중독의 유형들이나타나고 있는 오늘 현실에서 정신분석적 접근은 유
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